전통혼례는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어진 예식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옛 선조들의 지혜와 따뜻한 배려와 낙천적인 한민족 문화를
그대로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정말 흥미진진 합니다. - 행랑아범 -


1. 맞선

맞선의 장점은 상대방의 여러 조건을 이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한편, 연애는 극히 감정적인 면에 치우쳐 오류를 범하기가 쉽다. 그러나 비교적 상당 기간 동안의 연애는 상대방의 성격과 생활, 감정을 접할 수 있으므로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하겠다.

맞선의 장소는 흔히 신부쪽이 지정하는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에티켓이다. 가능하다면 식사시간, 야간, 현란한 조명밑,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맞선의 시간은 두 시간이내에서 마치는 것이 좋다.

복장은 평소에 입는 옷을 깨끗이 손질하여 다려 입고 잘 다듬은 손톱, 먼지 없는 신발, 평법한 액세서리에 진하지 않은 화장 정도가 적당하다.

적당한 화제는 인사, 소개와 의례적인 말이 있은 다음 동반인과 중매인이 분위기를 살려가면서 자연스러운 일상 생활의 주변에서 부터 화제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맞선 당사자 둘만의 기회를 마련하여 주어야 한다.

맞선 이후 양가와 본인들의 혼인 합의가 이루어지면 신랑측은 사성(四星, 사주)을 신부집에 보내게 된다.

사성 이란 신랑의 사주(생년월일시)와 편지를 신부집에 보내어 공식적인 청혼을 하는 것이며, 천간(天干), 지지(地支)에 의하여 궁합, 택일 등을 하게 하기 위함인데 이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청혼, 허혼과정에서 약식으로 다 거친 과정이다.

사성과 봉투

흔히 사성봉투에는 신랑의 사주외에도 다음과 같은 편지글(청혼서 혹은 강서)을 써넣어 보낸다. 사주를 받아 들이는것은 약혼을 의미하며, 혼인을 거절하려면 사성를 받지 않아야 한다.

사성 편지글

이 내용을 한글로 쓰자면 이런 표현이 될것이다.

"엎드려 편지를 받자오니 매우 감사합니다. 근간에 존체 만중하십니까. 저의 자식 혼사는 이미 허락하심을 받았사오니 저의 가문의 다행이며 경사이옵니다. 가르치심에 따라 사성단자를 보내오니 혼인 일자를 회신하여 주심이 어떠하오리까"




2. 약혼

약혼은 앞으로 결혼하겠다는 약속이자 결혼의 전주곡이다.

약혼식 당일의 비용은 신부측에서 부담하는 전례가 있었지만 이것은 봉건적 사상에 의한 관습일 뿐, 혼사는 양가의 경사이니 신랑측에서도 합당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약혼식장은 신부의 집을 주로 이용했으나 요즘에는 한적한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3. 택일

결혼 날짜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부의 신체적 컨디션이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생리일이 예정시일보다 늦거나 빨라지는경우가 있으므로 이 점을 고려하여 생리가 끝난 날로 부터 일주일 이내에 식을 올리도록 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연길 (涓吉)이란 사성을 받은 신부집에서 결혼일자를 택일하여 신랑집에 택일단자(날받이)를 보내는 의식이다. 이 때에도 편지글(허혼서)과 함께 보낸다. 연길은 연길봉투에 넣는데 봉투와 편지는 다음과 같이 쓴다.

연길과 봉투

연길 편지글

위의 연길 편지글에서 장제(章製)란 신랑 옷의 칫수를 말하는데 신부집에서 신랑의 옷을 만들어 주려고 할때에 그 치수를 알려달라는 뜻이다. 위의 내용을 한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편지를 받자오니 감사한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근간에 존체만안 하십니까. 저의 여아 혼사는 이미 사성단자를 받자오니 저희 가문의 경사이옵니다. 결혼일자를 가려서 삼가 보내오니 신랑의 의복 치수를 알려 주심이 어떠하오리까"






4. 납폐 (함 보내기)

납폐는 혼인 전날 신랑집에서 혼인을 허락해 준 감사의 보답으로 홍색 청색 비단 등 신부용 혼수감과 혼서지 및 물목을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을 말하며, 옛날에는 하인이나 심부름꾼(함진아비)을 사 을 져 보냈으나 요즈음은 신랑 친구들이 가방으로 메고 간다. 이 때에 너무 무리한 수고비의 요구로 경사스런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에다 먹칠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어머니 또는 복많은 여인이 상 위에 함을 받아놓고 북향 재배한다. 그리고 안방으로 바로 가져가 깔고 않으면서 "복 많이 들었네!" 하고 소리친다.

납폐 편지글(혼서지; 혼인문서)은 길이 36 cm, 폭 60 cm정도로 하여 9칸을 접어 양편 1칸씩 비우고 7칸에다 쓴다.

납폐 편지글


"봄이 무르익은 계절이온데 존체만복 하십니까. 저의 장자 o o 가 이미 성장하여 배필이 없더니 높이 사랑하심을 입사와 귀중한 따님으로 아내를 삼게 해주시니 이제 조상의 예에 따라 다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삼가 납폐하는 의식을 행하오니 살펴 주시옵소서"


물목서식

혼수함

고운 종이를 먼저 깔고
혼서지를 넣은 다음
홍단을 청장지에 싸서
먼저 담고,
청단은 홍장지에
싸서 담은 후
물목서식을
넣고 종이를 덮는다.

그리고
혼수감이 놀지 않게
싸리나무 가지나
수느리대로 통계를 하여
푸꽂이를담고
함을 닫는다.


홍보로 함을 싸되
네 귀를 맞추어 싸고
남은 끝을 모아
종이를 감는다.
그 곳에 근봉(謹封)이라 쓰고 진보베로 절방을 매고 관대참과 같이 농삼장으로 싸서 다시 새끼로 절방을 맨다.






5. 대례(혼례식)

  • 초행(初行)

    신랑과 그 일행이 신부집에 가는 것을 말한다. 일행에는 상객(上客; 신랑 집안의 어른), 후행(後行; 근친중 두 세명), 소동(小童; 어린이 2명)으로 구성하고 신랑과 상객은 말을 타고 가기도 한다.
    신랑일행이 신부마을에 도착하면 신부집에서는 대반(對盤; 안내인)을 보내 일행을 미리 준비해둔 사초방(신부집이 아닌 이웃집 혹은 주점)에 맞이한다.
    요기상을 들여 일행이 간단한 요기를 한 후에 신랑은 사모관대 등 의관을 정제하고 신부집으로 향한다. 신부집을 들어설때 대문간에 짚불을 놓아 신랑이 그것을 타넘게하여 부정을 방지한다고 믿기도 한다.

    초행 행렬, 신랑이 홍포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의 민화)

  • 전안지례(奠雁之禮)

    신랑이 신부댁 혼주에게 나무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를 말한다. 이때부터 노 선비가 홀기(笏記; 혼례나 제례의 절차를 적은 글)를 부른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병풍을 두른 앞에 작은 상을 놓고, 상위에 붉은 보자기를 깔아 놓는다(전안상).
    신랑이 상 앞에 꿇어 앉아 하인으로부터 받은 나무 기러기를 상위에 올려 놓고 네번 절한다. 신부의 어머니가 치마로 기러기를 받아 신부가 있는 안방에 던진다. 기러기가 누우면 첫딸, 일어서면 첫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기러기를 의식에 사용하는 뜻은 기러기처럼 의리를 지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 교배지례(交拜之禮)

    신랑이 대례상 앞으로 안내되어 동쪽에 선다. 신부가 원삼(圓衫)을 입고 손을 덮은 한삼(汗衫)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모의 부축을 받아 안방에서 나와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신랑과 바야흐로 마주 선다. 이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오는 것을 본 후에 신부가 머리를 얹기 때문이다.

    먼저 수모의 도움을 받아 신부가 두번 절하고, 신랑은 답례로 한번 절한다. 다시 신부가 두번 절하고 신랑이 한번 절한다.

    * 대례상 : 촛대, 송죽(松竹), 장닭, 쌀, 밤, 대추, 술잔 등으로 차려 놓는다. 지방에 따라 송죽 대신 꽃을 놓고, 시루에 기름종지를 얹고 불을 피우거나, 용떡이라 하여 가래떡을 둘둘 말아 놓기도 하며, 문어포를 오려 봉황을 만들어 얹기도 한다.

  • 합근지례(合근之禮)

    신랑과 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는 의식. 수모가 상위의 술잔 혹은 표주박 잔에 술을 따뤄 신부에게 주어 약간 입을 대었다가 받아 신랑의 시중꾼(대반)에게 준다. 신랑은 이를 받아 마시고, 답례로 대반이 다른 술잔에 술을 따라 신랑의 입에 대게 했다가 수모에게 건네주어 신부가 입에 대었다가 내려 놓는다.
    이렇게 두번을 반복한 후 셋째 잔은 서로 교환하여 마신다. 수모가 안주를 집어 신부에게 먹여주고 신랑은 손수 수저로 집어 먹는다. 이 예식은 술을 교환하여 하나가 되는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의미이다.

  • 신방(新房)

    합근지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각각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신랑은 사모관대를 벗고 신부집에서 새로 만든 도포, 또는 두루마기로 갈아 입는다.(관대벗김)
    신랑과 상객이 "큰상"을 받는다. 손을 대는 시늉만 하고 물려 그대로 광주리에 싸 신랑집으로 보낸다. 이 큰상은 신부집의 음식솜씨를 대표하므로 정성을 다하여 차린다.
    상을 물린 상객은 사랑방에서 신부집 어른들과 인사를 나눈후 귀가한다. 예전엔 상객이 신부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저녁 때가 되면 신방을 꾸민다. 안방이나 더 나은 방을 정하고, 신랑이 먼저 들어가 있으면 혼례복을 그대로 입고 기다린 신부가 들어온다. 지방에 따라서는 신부가 예복을 입은 채 기다리는 신방으로 신랑이 들어간다. 간단한 주안상을 들여와 술을 나눈 다음 신랑은 신부의 족두리와 예복을 벗긴다. 족두리는 반드시 신랑이 풀어 주어야 한다. 신랑이 옷깃으로 촛불을 끈다. 입으로 불어 끄면 복이 나간다고 믿는다. 이 때부터 아침까지는 신랑 신부의 자유시간이다! ^v^
    아침이 되면 신방에 잣죽이나 대례상에 올렸던 용떡으로 떡국을 끓여 가져온다. 식사후 장인과 장모에게 절하며, 친지들에게도 인사를 한다.

    * 신방 엿보기 : '신방을 지킨다'며 가까운 친척들이 신방의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뚫어 엿본다. 신랑이 촛불을 끄면 물러나는게 예의이다.

  • 동상례(東床禮)

    점심 때를 전후하여 신부집의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신랑 다루기'를 하는데 이를 동상례라 한다.
    신랑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여 이를 빌미로 신랑의 다리를 띠로 묶어 짊어 지거나, 대들보에 매어 달아 발바닥을 방망이로 친다(안 다치게 살~살~). 신랑이 (다리가 부러진듯이 크게^^) 비명을 지르면 장모가 달려 나와 말리거나, 신부가 음식을 푸짐하게 ;-) 내어 놓는다.






6. 후례

  • 신행(新行)

    신부집에서의 대례가 끝나면 신부는 시집으로 오는데 이를 신행 또는 우귀(于歸)라 한다.
    신행에는 당일신행, 삼일신행, 달을 넘겨 가는 '달묵이', 해를 넘겨 가는 '해묵이' 신행이 있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 갈 수록 '해묵이'신행이 많았으며 이 때에는 신랑이 몇 차례 신부집에 다니러 간다(재행).
    신부가 우귀할 때는 신부를 비롯하여 상객, 하님, 짐꾼들이 행렬을 이룬다.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갈 때는 가마위에 호랑이 가죽을 씌우며 방석밑에는 목화씨와 숯을 깐다.
    신랑집 가까이 오면 사람들이 앞에 나서서 목화씨, 소금, 콩, 팥 등을 뿌려 잡귀를 쫓고 대문간에 짚불을 지피고 넘어 오도록 하기도 한다.
    대청앞에 가마를 세우고 신랑이 가마 문을 열어 신부를 맞이 한다. 가마위의 호랑이 가죽을 지붕위에 던져 신부의 도착을 동네에 알린다.

    가마타고 시집가는 신행 행렬(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의 민화)

  • 현구례(見舅禮)

    신부가 시부모와 시가의 사람들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폐백이라고도 한다. 신부집에서 가져온 닭찜, 안주, 밤, 대추, 과일 등을 상에 차려 놓고 술을 따라 올리며 절을 한다.
    절을 받는 순서는 시조부모가 계셔도 시부모가 먼저 받는다. 다음에는 세대순 항렬순으로 절을 받고 형제 자매는 맞절을 한다. 어른들은 절을 받으며 예물을 주거나 밤, 대추를 치마 밑에 넣어주면서 축원한다.
    폐백이 끝나면 신부와 신부상객은 '큰상'을 받아 손을 대는 시늉만 하고 신부집으로 싸서 보낸다. 이어서 상객과 하님이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 신부는 일찍 일어나 시부모에게 문안인사를 올린다. 이것은 시부모가 그만 하라는 말을 할때까지 올리지만 통례로 시부모는 삼일만에 그치게 한다.
    신행 온 후 3일간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가까운 친척의 집에 다니며 인사를 시키며, 친척들은 새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3일 후 부터는 부엌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 근친(覲親)

    신부가 시집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일주일 만에 근친을 가지만, 옛날에는 신부가 시가에서 첫 농사를 지어서 그 수확물로 떡과 술을 만들어 가지고 갔다. 근친때는 많은 예물을 가지고 가서 푹 쉬었고, 돌아올 때도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다.
    근친때는 신랑이 동행을 하며 이때 장모는 사위를 데리고 친척집으로 다니며 인사를 시키고 친척들은 식사를 대접한다.

    신부가 근친을 다녀와야 비로소 혼례가 완전히 끝난것이 되고, 이 때 쯤이면 신부는 시댁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게 된다. (^o^)


요즘의 혼례식이 옛날과는 절차와 방법은 많이 달라졌지만 기본정신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남선녀의 만남과 삶은 지고지순한 것으로서, 선인들의 바른 정신을 이어받아 그 얼을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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