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陽金氏 庚午譜 識文 우리 족보는 영조 갑신(1764년)에 창간하여 지금까지 모두 일곱차례나 간행되었다. 족보가 간행될 때마다 서문과 지문 발문들을 깊이 되새겨 읽어보면 우리 김문의 先父老 (선부로)께서는 숨은 長德(장덕)으로 종족을 모으고 昭穆(소목)의 계통을 밝혀주는 懇誠 (간성)에 읍읍한 어려움을 어찌 감히 말로다 표현하리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 후손들은 지금까지 구문학인 한문만으로 편집간행된 족보의 해독에 어려움이 있어서 조상의 유래와 위대한 事行(사행)뿐만 아니라 가까운 내집안의 가계마저도 考徵(고증)하는데 어려움을 慟感(통감)한 나머지 신해보(1971년)를 발행한지 겨우 20년째인 경오(1990) 元月(원월) 안동 일직회관에서 우리 김문 총회를 열고 알기 쉬운 飜譯譜(번역보) 重刊事(중간사)를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글 한자 혼용으로 古甲子(고갑자)와 국제연호인 서기를 병기하는 새로운 대동보를 발간하기로 발의, 가결하고 동년 孟秋(맹추)에 合單(합단)하여 越年(월년) 辛未(신미,1991년) 花辰(화진)에 正單校正(정단교정)으로 편집을 마치고 인쇄에 등재할 즈음 이 족보가 완성됐다는 감격의 기쁨을 함께 하면서 僉宗(첨종)께서 어렵게도 이루어진 대역사의 전말을 기록하라고 나에게 명하니 不德不文 (부덕불문) 임에 굳게 사양하였지만 끝내 사양치 못하고 몇 말씀 기록하는 바입니다. 나 역시 이 역사의 어려움을 몸소 겪으면서 조그만 일조로 참여는 하였으니 어찌 깊은 감회가 없으리오마는 우선 완성의 기쁨보다 번역 내용의 미완성이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일차적인 미완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이 어려운 역사의 첫 고리를 풀었다는데 더 큰 뜻이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라면서 일후에 다가오는 후예들은 오늘의 미완성을 내일의 완성된 작품이 되도록 깊이 연구하고 보완해 줄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끝으로 한말씀 덧붙인다면 우리가 족보를 간행하는 본의는 위로는 훌륭하신 조상들의 德業(덕업)과 遺訓(유훈)을 이어받고 아래로는 후손들의 사실을 수록하여 한 할아버지의 혈통은 더욱 친해지고 멀어진 사람도 친하게 되어서 路邊(노변)에서 만나는 남과같이 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우리 先父老(선부로)들께서 후손들을 위하여 어렵게 남겨주신 숨은 長德(장덕)이 오늘을 講明(강명) 하심이리라. 여기에 報本(보본)하여 한 조상의 혈통을 함께 나눈 同譜(동보)의 우리로서 孝悌(효제)의 마음을 가지는데 더욱 힘쓰고 敦睦(돈목)의 인정을 다짐하면서 급변하는 이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어 상부상조할 것이며, 앞으로 이 족보를 인연하여 花樹團樂 (화수단락) 의 화합을 이룩하여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면 어찌 거룩한 사업이 아니리오. 감히 외람됨을 잊고 이 글을 서술하는 바입니다. 歲 辛未 壹千九百九十一年 孟夏節 下澣 後孫 時鉉 謹識 (세 신미 1991년 맹하절 하한 후손 시현 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