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澤 殯所洞 由來(산택 빈소골의 유래)  
산택(山澤)과 빈소골(殯所洞)의 유래(由來)

경북 점촌시에서 동으로 국도를 따라 약 20리 지점 국도 변 오른 쪽에는 아담한 연못(산택지)사진보기 하나가 있다. 해 마다 여름이면 푸른 연잎이 온 수면을 뒤덮고 우아하게 피어나는 붉은 연꽃은 불당에 연등을 세워 놓은 듯 그 아름다운 풍광은 지나는 길손들의 눈길을 끌게 하는 곳이다. 국도를 중심하여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건너다 보면 새들과 함께 벗하며 평화롭게 보이는 이 마을이 영양김씨 산택파의 옛 터전 사진보기으로 우리 김씨의 5백여 년간 영고성쇄를 간직한 오늘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 숲 속에 아늑히 쌓여있는 고색이 창연한 이 정자는 영양김씨 산택파 입향 선조이신 사간원 정언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림들과 후손들이 성력을 다하여 세워진 영모정 사진보기이다. 우리의 방촉지인 산택은 원래 마을의 이름이지만 용궁읍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멀지 않는 시대에 형성된 자연부락으로서 월오에서 옮겨 살게 된 지금의 경북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 인 것 같다.

그러나 정확한 우리의 방촉지는 유적의 흔적이 기록은 없지만 집안 어른들의 구전에 의하면 적제산 동남쪽 양지바른 산 아래 지금의 용궁면 월오리 1192번지의 107평 대지가 옛날 우리 선조들의 신주를 모셨던 사당터사진보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터전만 보전되어 내려오고 있으니 과연 여기가 우리 산택파가 시작된 방촉지의 중심지 임을 고증할 수 있다. 고개 너머인 산택리에 언제 옮겨 살게 되었는지 구전과 기록이 없어서 알 길을 없지만 적제산 기슭의 월오리가 우리의 방촉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선조께서 여기에 처음 오시게 된 것은 영락 을미 1415년에 문과에 급제하시고 통훈대부홍문정자박사로서 용궁현감으로 부임하신 용궁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용궁공께서 용궁의 산수가 수려함을 살피실 때 대소화령의 웅장하고 줄기찬 산세가 봉황이 춤을 추며 나는듯이 부드럽게 뻗어서 내려오다가 다시 우뚝 솟은 비봉산 이어서 장승산 적제산이 속나래 처럼 포근히 감싸 안은 듯 병풍처럼 둘러 있고 산기슭에 거울처럼 맑은 호수는 문자 그대로 산과 못이 함께 어우러진 산택을 연상 하셨으리라.

과연 여기가 나의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 줄 터전이라 예상하시고 둘째 아들을 살게 하셨으니 이것이 오늘의 산택파의 시작이다. 또 용궁현 도도동 지금의 의성군 안사면에도 셋째 아들까지 살 터전을 마련해 주셨으니 지금의 도호파이다. 그리고 큰 아들만 대동하시고 고향인 예안으로 귀향하셨으니 지금의 예안파 산택파 도호파등 삼형제가 분파된 것도 그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산택파의 입향선조는 누구이신가 공의 휘는 철린이요 자는 사유이며 호는 영모정이시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을 지내셔서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서 이웃 고을은 물론이고 온 나라에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행신과 덕망이 두터워서 여러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으나 애석히도 중년으로 별세 하셨으니 향리의 사람들이 공의 유덕을 추모하였다.

묘소는 산택리 뒤 장승산 유좌원에 모셨으나 변란으로 실전하였다. 배위는 청송심씨이며 맑은 부덕과 아름다운 행신은 규중의 요조숙녀이며 대쪽처럼 곧은 정절은 지어미의 덕을 갖추셨고 엄격한 자식의 교육은 맹모교자법을 이으셔서 강보의 외아들을 승의랑예빈시부정으로 훌륭하게 키우시고 그뒤 음덕으로 손자 5형제를 몸소 육영하시어 큰 손자는 산택을 지키게 하고, 둘째 손자는 농암, 셋째 는 무후하고 넷째 손자는 죽곡, 원동, 다섯째 손자는 읍곡 등의 5파로 분파되는 번창함을 보여 주었다.

특히 사간원정언공이 별세하신 날로부터 우리 심씨 할머님께서는 산 아래에 막을 짓고 부창부수의 뜻을 받들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빈소를 차려 놓은 여막에서 항상 부군을 사모하시면서 평생을 머리에 빗질도 않으시고 빨지도 않은 상복을 입으시고 아침 저녁 상식과 애곡으로 시묘살이로 남은 여생을 마치시니 그뒤 고을 사람들이 망부의 정절에 감동되어 그 곳을 빈소골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 때부터 유래가 된 빈소골은 5백 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빈소골과 심씨 할머니의 이 미담에 얽힌 전설은 글로 전해지지 못하고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더러 정언공의 유고 마저도 국가의 변난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서 후세에 전해지지 못함을 애석히 여긴 나머지 고을의 유림들과 후손들이 정성의 뜻을 모아 구전구비를 수집하고 사람들의 칭송의 글을 모아 문집으로 간행 사진보기 사진보기 하였으며 영모정을 세워 길이 추모키로 하였다. 더구나 정언공의 묘소마저 찾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후손들이 빈소골 상상봉에 제단비를 세우고 심씨 할머님의 묘소마저 제단비 왼쪽에 이장하여 모셨으니 지금의 빈소골의 정언공 제단비와 심씨 할머님의 묘소인 것이다.

이로부터 산택파의 역사는 5백 여년의 풍상 속에도 면면히 이어 내려온 후손들은 용궁, 예천, 문경, 상주, 풍기 등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으며, 지금은 서울 경기지방에도 약 50여 세대가 살고 있어서 재경 영양김씨 종친회를 창립해 놓고 있다. 그래서 빈소골 이야말로 우리 심씨 할머님께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교훈이며 전통 정신의 값진 유산인 것이다.

더구나 이 망부의 정절이 얽힌 미담의 빈소골은 정언공 양위분 묘소를 비롯하여 선조들의 묘소와 우리 모두 이 선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영의 영혼이 5백여 년간 영고성쇠의 역사를 지켜주면서 고요히 잠들고 계시는 빈소골 산천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고향의 빈소이기도 하다. 특히나 산택과 빈소골을 지켜주시고 여러 선영을 보호해 주시는 재향 종친 여러분들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또한 고향의 수호신처럼 우뚝 선 영모정은 영원한 망향의 상징이 되어 줄 것이며 먼 훗날까지 길이 이어지는 고향의 정자가 되어 줄 것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우리 조상의 유래에서)

갑자 1984년 8월 1일 후손 원대 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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